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와치급 전함 (문단 편집) == 상세 == 하지만 실제론 육각형의 배치로 인해 우현 혹은 좌현으로 화포발사시 반대쪽 현의 화포는 사용할 수 없어 한쪽 포는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해당 배치는 독일의 [[나사우급 전함]], [[헬골란트급 전함]]과 동일하고, 영국의 [[HMS 드레드노트]]의 포탑 배치와도 유사하다. 영국의 기술 지원으로 해군을 키우고 있었던 당시 일본인지라 배치가 저렇게 되었으며, 당시의 전함들에서는 그렇게 드물지 않게 채택되던 구조였다.] 그리고 중앙의 포가 45구경장, 전후가 50구경장이라는 것도 사격지휘에 문제가 있었다. 포의 구경장이 달라지면 구경이 동일하더라도 사거리와 탄도 특성이 완전히 달라진다. 즉, 동일한 목표물을 쏘려면 포의 부앙각부터 서로 다르게 잡아야 한다. 결국 일을 두 번 해야 하는데 빠르게 사격제원을 산출해야 하는 전투 상황에서는 문제가 커질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부포의 종류가 지나치게 다양해서 마찬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후의 전함들이 주포와 부포의 규격을 통일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카와치는 취역 후 4년 뒤인 [[1918년]] 7월 12일에 도쿠야마 만에서 훈련 도중 화약고가 폭발하는 사고로 인해 침몰했다. 이 폭발사고로 카와치의 [[수병]] 621명이 [[사망]]했는데 [[인양]]을 단념하여 결국 9월 21일에 카와치는 함적에서 [[제적]]처분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칭다오 전투]]에 참가하여 [[독일령 칭다오]]에 포격을 가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 최초의 국산전함 [[후소급 전함]]이 나오고 구식화되었다. 2번함 셋쓰는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 따라 1922년 무장 해제되어[* 이 때 제거된 50구경장 주포탑은 [[쓰시마]] 요새의 요새포로 전용되었고, 45구경장 주포탑은 일단 해체된 뒤 예비물자로 보관되었다. 또한, 12cm 부포 중 1문이 후쿠오카시에 위치한 카시이궁(香椎宮)이라는 신사에 기증되어 현재까지도 보존되고 있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3/37/Kashii_guu_Settsu_12inch_ordnance.jpg|#]]] 표적함으로[* 셋쓰 자신이 표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표적물을 끌고 다니는 용도였다.] 변경되었으며, 1936년에는 폭격훈련용 표적함으로 개조되었다.[* 이 과정에서 무인조종장치를 탑재했다. 다만 완전히 무인조종이었던 것은 아니고, 훈련시에만 무인으로 조종하며 훈련 장소까지 끌고 가는 것은 승무원들이 담당했다.] 이후 1945년 [[구레 군항 공습]] 당시 미해군 TF38 소속 F6F 헬켓들의 공습을 받고 좌초, 이후 잔존 무장마저 모두 제거된 채로 수상병영으로 개조되던 도중 추가적인 공습으로 완전히 버려졌다. 전후에는 인양 후 스크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